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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느림 & 불편, 그래서 사람들은 증도로 간다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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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들을 징검다리삼아서 증도로 가는 길

전남 무안의 해제반도에서 연륙교를 건너 지도로, 지도에서 또 다리를 넘어 사옥도로, 사옥도의 지신개 선착장에서 또다시 철부선을 타야 비로소 전남 신안의 증도 땅이다. 징검다리를 딛듯 섬과 섬을 건너뛰어야 닿는 증도. 증도는 사실 볕으로 달궈진 염전과 질척한 개펄, 그리고 길고 긴 백사장을 가진 해수욕장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단번에 마음을 휘어잡는 절경도, 이름 붙여줄 만한 기암괴석도, 아름다운 색깔의 바다도 없다. 유배됐던 이름난 선비도 없고, 진한 역사의 향취를 느껴볼 만한 흔적도 없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며 협박하듯 을러대는 명소가 있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섬을 가로지르는 왕복 2차선의 포장도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길은 질퍽거렸고, 바다에는 겨우내 김발을 걸었던 지주들만 황량하게 박혀 있었다. 예부터 바다보다는 기름진 땅에 기대고 살아온 탓인지 마을은 해안보다는 안쪽에 깊숙이 들어서 있고, 고깃배보다 논과 밭이 더 많았다. 섬이라지만, 육지와 별반 다를 것도 없는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사옥도 지신개선착장은 증도로 건너가려는 차들이 줄지어 몰려들어 북적거렸다. 승용차 스무대쯤을 싣는 철부선은 매번 차들을 빼곡하게 싣고 숨을 헐떡거리며 바쁘게 오갔지만, 순서에 밀려 배를 타지 못한 차들은 길게 줄을 서서 다음 배를 기다렸다. 과연 증도의 어떤 매력이 여행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일까. 증도에 들어서면서 줄곧 맴돌았던 질문이다.

# 증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소금

증도의 버지선착장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외지인들을 맞는 것은 소금이다. 소금창고를 개조해 만든 소금박물관과 끝간 데 없이 펼쳐진 태평염전의 소금창고가 눈에 들어온다. 소금박물관에서는 소금에 얽힌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배울 수 있다. 예컨대 월급을 뜻하는 샐러리(salary)가 ‘소금의 지급’이란 라틴어(sala-rium)에서 왔다거나, 샐러드(salad)가 야채에 소금을 뿌린 음식에서 출발했다는 것 등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이 밖에도 소금이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거나 주몽의 고구려 건국에 소금이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태평염전은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의 염전. 1년에 1만5000t의 천일염을 생산해낸다. 증도의 염전은 6·25전쟁 직후인 1953년, 당초 전증도와 후증도로 나뉘어진 섬을 간척해 이어붙이면서 생긴 땅에 만들어졌다. 피란민들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중국산 저가 소금이 밀려오면서 다른 대규모 염전은 다 문을 닫았지만, 태평염전은 용케 버텨왔다. 이즈음에는 천일염의 미네랄 성분이 널리 알려지고, 지난 3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광물로 취급해오던 천일염을 식품으로 인정하면서 소비가 늘어 이전보다 한결 사정이 나아졌다.

바닷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밤낮없이 수차를 돌려야했던 예전보다는 낫지만 소금 만들기는 여전히 고된 일이다. 매년 4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꼭두새벽부터 밤늦도록 물을 대고 소금을 긁어모으는 일이 반복된다. 비라도 내리면 노동량은 두 배, 세 배가 된다. 소금은 햇볕과 바람, 그리고 염부들의 굵은 땀으로 이뤄진다. 그래서일까. 결정지에 모아진 반투명한 살찐 소금은 마치 보석과도 같다.

# 근대의 풍경부터 낭만적인 리조트까지…

증도는 해안가보다 섬 안쪽 깊숙한 곳에 마을들이 들어서 있다. 예부터 바다보다는 기름진 땅에 기대고 생활해온 까닭이다. 그런 탓에 서쪽 일부 해안과 철부선이 닿는 쪽을 제외하고는 바다를 끼고 있는 드라이브 도로도 변변한 게 없다.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몇개의 포장도로를 제외하고는 도로사정이 좋지 않다. 잠깐만 샛길로 들어서도 곧 진흙탕길을 만난다. 그 길에서 마주친 마을은 시계가 멈춘 듯 70~80년대 분위기를 풍긴다. 면소재지만 벗어나면 슈퍼마켓은 물론 구멍가게 하나 없다. 너무도 조용해서 적막하기까지 하다. 이런 여행지는 차를 타고 휑하니 달리기보다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니는 게 제격이다. 면사무소에서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주는 데다, 대부분의 구간이 구릉이 거의 없는 평지여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맛이 좋다.

섬북쪽에는 1976년부터 9년 동안 계속된 해저유물 인양작업으로 14세기의 중국 송·원나라 시대 도자기 2만여점과 침몰한 선체 등 모두 2만8000여점의 유물이 건져올려진 해역이 있다. 그러나 이를 기념하는 비석과 전망대만 덩그러니 서있는 데다 풍경도 그닥 빼어나지 않아서 그다지 감흥이 없다. 다만 이곳의 낙조 풍경만큼은 손꼽을 만하다.

섬지역 대부분에는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지만, ‘엘도라도’ 리조트가 들어선 우전해수욕장 부근은 예외다. 엘도라도 리조트는 마치 동남아시아의 고급리조트를 연상케 할 정도로 고급스럽고 또 낭만적이다. 꼭 숙소에 묵지않아도 리조트를 둘러보거나 부대시설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인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우전해수욕장 북쪽 끝 개펄에 놓인 길이 470m의 ‘짱뚱어 다리’도 낭만적인 풍경에 가세한다. 간조 때 다리 위에 서면 발 아래 농게와 칠게, 그리고 짱뚱어들이 개펄을 뒤덮고 있다. 해가 막 지고 대기가 푸르게 빛나는 때, 다리 위의 간접조명에 불이 켜지면 낭만적인 느낌이 더해진다. 특히 커플이라면 밤바다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다리 위를 산책하는 맛을 놓칠 수 없다. 짱뚱어 다리 너머 우전해수욕장에는 짚으로 지붕을 인 해변 그늘막을 설치해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 육지에서 멀고 먼 땅이었던 섬의 과거를 듣다

증도는 동력선이 뜨기 전까지만 해도 지독한 오지였다. 증도에서 나룻배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족히 대여섯 시간 산길을 걸어야 뭍에 겨우 당도할 수 있었다. 증도에서 지난 1968년부터 8년 동안 주민들을 실어나르던 나룻배를 젓는 뱃사공 일을 했다는 박종인(77)씨는 간간히 한숨까지 쉬어가면서, 증도에서 뭍으로 가는 험한 노정을 설명했다.

“증도에서 나룻배로 사옥도에서 내리믄 2시간을 걸어 아홉 구비 산을 넘어야 반대편 나루에 가닿제. 여기서 지도 가는 나룻배를 다시 탔네. 지도에 당도하면 또 2시간이 넘게 산길을 걸어 나룻배를 또 타야하제. 그래야 무안의 해제에 도착했고, 여기서 또 목포로, 광주로 나가려면 하루 해로는 어림없지라.”

박씨가 젓던 나룻배는 스무명쯤이나 타는 목선이었는데,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팔러가는 소를 싣기도 했고, 신행 길의 가마를 싣기도 했다. 섬 주민 모두가 유일한 교통수단인 나룻배를 탈 수밖에 없던 탓에 운임은 탈 때마다 계산하지 않고, 6개월치씩 끊어서 받았다. 한 가구당 보리 닷되와 나락 닷되가 1년 동안 나룻배를 타는 비용이었다. 그것마저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내지 못했다. 이렇게 받은 게 1년에 60가마가 됐다. 그러나 뱃사공 일은 고되고도 고됐다. 휴일도 명절도 없이 매일 해가 뜨면 나루터에 나가서 해가 진 뒤에야 돌아왔다. 손끝이 추위로 곱는 엄동설한에도 노를 잡아야했다. 조류에 배가 뒤집혀 죽을 뻔한 고비도 여러번 겪었다고 했다.

그래서 박씨는 내년에 사옥도와 증도를 잇는 다리가 놓이는 게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박씨는 몇번이고 “그때까지만 살아있으면 여한이 없다”고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 증도의 매력…느린 시간과 손대지 않은 풍광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사람들은 왜 증도를 찾아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느리게 가는 시간’과 ‘손대지 않은 풍광’ 때문이 아닐까. 증도는 지난해 완도의 청산도, 담양의 창평, 장흥의 유치와 함께 슬로시티국제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느리게 사는 삶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사실 도회지의 시간에 익숙한 여행자에게 슬로시티의 ‘느린 시간’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증도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철부선을 타고 어렵게 들어가야 한다거나, 마땅한 식당을 찾기 어렵다는 것 같은 불편함에서 오히려 감동을 느끼는 눈치였다. ‘판박이 같은 관광지’의 느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섬 마을의 정취를 즐기는 것이리라. 여기다가 천일염을 생산하는 전국 최대 규모인 태평염전과 ‘엘도라도’란 이름의 화려한 리조트, 그리고 개펄에 세워놓은 ‘짱뚱어다리’의 낭만도 한몫을 했지 싶다.

그러나 증도에는 지금 곳곳에 식당이 들어서고 있고, 해안을 따라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놓이고 있다. 급기야 내년 초에 사옥도와 증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놓이면, 증도는 섬 아닌 섬이 되고 만다. 사옥도와 증도 사이를 나룻배로 이었던 사공은 “다리 놓는 것을 보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했지만, 자꾸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섬은 섬으로 두는 것이 1년에 한 번쯤 섬을 찾는 사람이나, 그곳에 깃들어 평생을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섬 사람들이 ‘한번 와서 살아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 증도 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함평분기점에서 광주·무안 간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북무안 나들목으로 나와서 현경을 거쳐 24번 국도를 탄다. 해제를 지나 연륙교를 건너 지도와 송도를 넘어 사옥도까지 간다. 사옥도에서 지신개 선착장 방면으로 가면 철부선을 타고 증도로 들어갈 수 있다. 안내판이 잘 돼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사옥도에서 증도까지는 철부선으로 15분 남짓 소요된다.

어른 왕복 3000원, 승용차는 1만5000원. 철부선에는 20대 남짓의 차를 실을 수 있다. 증도로 들어갈 때는 요금을 받지 않고, 증도에서 사옥도로 나올 때 왕복요금을 받는다. 사옥도에서 증도로 드는 배는 오전 6시4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 11차례 있다. 증도에서 나오는 배는 오전 7시35분이 첫 배이고 막배는 오후 10시20분에 있다. 차들이 밀리거나 승객들이 몰리면 수시로 증편 운행한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엘도라도 리조트가 단연 첫손으로 꼽힌다. 인터파크 투어 등 인터넷 예약사이트 등을 통해 예약하면 평일 가장 작은 평수의 숙박료가 14만7000원부터다. 난개발을 막기 위해 숙박업허가를 내주지 않아 엘도라도 리조트 외에는 숙박시설이 다소 열악한 편.

그 중 시설이 나은 곳이 보물섬민박(061-271-0631). 화용민박(061-275-7734)에 묵으면 주인이 소유한 백합어장에서 백합캐기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증도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식당이었는데, 최근 들어 하나둘씩 새로 문을 열고 있다. 이즈음은 산란을 앞둔 병어(사진)가 제철이다. 고향식당(061-271-7533)에서는 어른 손바닥보다 훨씬 크고 두툼한 병어를 재료로 회와 찜을 내오는데 각 2만5000원을 받는다. 증도로 오가는 길에 지도의 송도어판장에 들러 저렴한 가격에 병어를 사서 인근의 횟집에서 회를 떠서 맛볼 수도 있다.

증도(신안)=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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