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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근대문화유산’인 전국 최대 염전 가진 ‘보물섬’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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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유산’인 전국 최대 염전 가진 ‘보물섬’
[길 따라 삶 따라] 신안 증도
내년 사옥도 연결 다리 완공돼 섬 아닌 섬
미네랄 시금치 200배인 함초 든 소금 명성



» 470m 길이의 증도 짱뚱어다리. 해질 무렵 물골에 비치는 햇살이 아름다워 연인과 데이트하기 좋다.

여행 포인트
'느리게 사는 삶'이 각광받는 시대다. 편의성·효율성이 미덕인 문명사회에 대한 반성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몸을 추스르고 마음의 여유를 찾자는 것이다. 삶의 본질과 가치를 다시 따져보려는 이들이 늘면서 일도 운동도 이동수단도 음식도, 더디고 불편함을 무릅쓰고 천천히 누리고 즐기는 옛 방식이 선호되는 추세다.

'더디고 불편하지만 여유로운 여정'으로 꾸려지는 섬 여행도 이런 맥락에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전남 신안군 증도는 지난해 말 담양 창평, 완도 청산도, 장흥 장평과 함께 이탈리아에 본부를 둔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슬로 시티'로 인증 받은 곳이다. 슬로시티는 적은 인구수와 네온사인 유무, 패스트푸드와 유전자 변형 음식 거부 여부, 수공업 전통과 문화유산 유무, 1회용품 사용 여부 등을 선정 기준으로 삼는다고 한다. 증도엔 천일염을 생산하는 대규모 염전과 드넓은 갯벌, 갯벌 위에 놓인 나무다리, 소나무 우거진 해안 산책로가 있고 옛 나루터 흔적과 섬지역의 전통 장례 풍습인 초분의 흔적도 남아 있다.


신안군은 섬나라다. 전남 서해 앞바다에 뜬 군(郡)으로, 군청만 육지인 목포에 있다. 한반도의 4198개 섬 가운데 3153개가 남한에 있고, 1965개가 전남지역에 있으며, 이 중 1004개가 신안에 있다고 한다.

신안의 섬들 중 일곱 번째로 큰 섬인 증도는 99개의 섬을 거느렸다. 본디 114개의 섬이 딸려 있었으나 염전 개발 등으로 이어지면서 줄었다. 사람이 거주하는 섬은 여섯 개다. 14개 마을에서 2200여명이 산다.



» 증도 돌마지나루의 노두 흔적.

어느 섬이든 거칠고 험하고 불편한 삶을 살아온 주민들의 애환이 배 있게 마련이다. 증도면 광암리의 논에서 모내기 마무리 작업을 하던 토박이 주민 박종인(77)씨가 말했다.

'여가 말하자믄 나으 태가 묻힌 곳이고, 말하자믄 여그서 나으 생이 마감되아부릴 것이여. 한시락도 빨리 다리가 놓여서, 나가 그걸 봐야 쓰것어.'

한반도 섬의 1/4이 몰려있는 신안군에서 7번째 큰 섬

옛날엔 증도에서 가까운 뭍인 무안 해제까지 가려면 '징그럽게' 오래 걸렸다고 한다. '나룻배 타고 사옥도·지도 거쳐 여섯 시간 걸려서 무안 해제로 들어갔제. 진번나루서 일단 배를 타믄 세 번을 걷고 배타고 또 걷고 배 타고 해야 무안 해제로 갔지라.' 지금은 사옥도까지 다리로 연결돼 지신개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10분이면 증도에 닿는다.



» 증도의 마지막 나룻사공 박종인(77)씨.

박씨는 증도의 '마지막 나룻사공(나루터 사공)'으로 불린다. 40대이던 1960년대 말부터 8년간 증도 진번나루와 사옥도 지신개나루를 오가는 나룻배의 노를 잡았다. 20명 정원의 목선에 우시장으로 내가는 소도 타고, 돼지도 타고, 시집가는 신부의 가마도 올랐다.

날씨가 좋을 때 열심히 노를 저으면 20분 걸려 사옥도에 닿았지만, 바람 불고 물살 센 궂은 날은 아무리 힘들여 노질을 해도 1시간이 넘게 걸릴 때가 많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를 잡아야 하는 고된 일이었지만 수입은 짭짤했다고 한다.

봄 가을로 보리 닷되허구 나락 닷되를 받았당게라. 소 태우면 따루 받고 가마 태워도 따루 받았제. 말하자믄 짐값이락게. 짭짤혔지. 항시 있는 건 아니어도 짐 많은 사람은 밥두 사고 술도 샀지라.'

그러다 목포에서 증도까지 3시간 걸리는 여객선이 뜨고 사옥도에서 철부선이 들어오면서 나룻배는 사라졌다. 나룻배는 사라졌지만, 나루터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노두로 불리는 갯벌의 돌다리가 그것이다. 간만의 차가 큰 갯벌에서 나룻배가 있는 물골까지 가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길이다. 병풍도로 가는 나룻배를 대던 돌마지나루와 광암리 진번나루 부근 등에 200~300m 길이의 노두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고것이 인자 물살에 허물어져 부렀지만 아조 오래 된 것이제. 조상 대대로 건너다니던 길이락게로.'

내년엔 사옥도와 증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완공될 예정이어서 증도는 배 탈 일 없는 섬이 된다.

증도의 매력적인 볼거리와 체험거리는 염전이다. 증도는 본디 전증도와 후증도로 나뉘어 있었는데, 1953년 두 섬 사이 갯벌에 대규모 태평염전이 조성되면서 하나의 섬이 됐다.



»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증도 태평염전. 여의도의 두 배의 크기로 단일 염전으로는 전국에서 최대 규모이다
3km에 걸쳐 도열한, 66개에 이르는 소금창고 풍경 ‘장관’  

태평염전은 여의도의 두 배 크기로, 단일 염전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라고 한다. 한국전쟁 직후 피난민 구제를 위해 만들어진 염전이다. 4월부터 10월까지 바닷물을 끌어들여 연간 1만5천여톤의 천일염을 생산해 낸다. 갯벌에서 자라는 함초(퉁퉁마디)의 영양성분과 천일염을 결합한 함초소금, 함초엑기스 등도 생산한다. 함초엔 90여종의 미네랄 성분이 들어 있는데, 그 함량이 김의 40배, 시금치의 200배에 이른다고 한다.

염전 들머리에 있는 소금박물관은 염전 조성 당시 돌로 쌓아 만든 소금창고를 개조해 문을 연 국내 첫 소금박물관이다. 인류와 소금에 얽힌 이야기와 소금 제조과정, 정제염과 천일염의 차이 등 소금에 관한 모든 자료를 전시해 놓은 곳이다. 소금박물관 옆 염전전망대에 오르면 광활하게 펼쳐진 염전과 그 한가운데로 3km에 걸쳐 도열한, 66개에 이르는 소금창고 행렬을 감상할 수 있다. 태평염전과 소금박물관은 각각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염전에선 소금을 직접 긁어모아 쌓는 대패질 체험, 수차 돌리기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증도에선 오래된 장례 풍습인 초분의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시신을 땅에 묻기 전에 짚으로 이엉을 엮어 덮어뒀다가 2~3년 뒤 뼈를 거둬 매장하는 풍습이다. 고인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곧바로 땅에 묻기를 꺼렸던 데서 비롯했다고 한다. 주민들이 오랜 출어 기간에 상을 당하는 경우, 객지에서 숨진 경우 등에도 초분 의식이 행해졌다고 한다.



» 소금 박물관(위)과 항월포~목넹기 사이 해안도로에 있는 초분 모형.

간만 차 이용해 고기 잡던 전통 어로방식인 ‘독살’ 흔적

70년대 새마을운동 등으로 이 풍습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으나, 지난 봄 증도엔 새 초분이 하나 생겼다. 증도면 증북리의 서아무개씨 집에서 상을 당해 초분을 쓴 것이다. 그러나 직접 보겠다며 찾아오는 이들이 늘자 유가족들이 초분의 관광 상품화를 꺼려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 증도면에선 관광객들을 위해 항월포와 목넹기 사이 해변일주도로변 산쪽에 초분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증도는 보물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1975년 '신안 앞바다 해저유물'이 발견된 곳이 바로 증도 앞바다이기 때문이다. 검산 방축마을 해안 언덕에 '송·원대 해저유물 발굴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9년간의 발굴 작업에서 청자·백자 등 자기류와 생활용품 2만여 점, 동전 28t 등이 쏟아져 나왔다.

증도 문화관광해설가 이종화씨는 '발굴 전후로 도굴이 횡행하고 이를 쫓는 경찰의 추적조사가 이뤄지면서 당시 증도 민심이 흉흉해지는 등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말했다.

발굴 기념비 부근 만들이 바닷가 바위자락엔 돌로 담을 쌓아 간만의 차를 이용해 고기를 잡던 전통 어로방식인 독살의 흔적이 남아 있어 살펴볼 만하다. 방축리엔 옛 검산마을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며 마을의 액을 막기 위해 세웠다는 방액석이 있고, 우전리 갈마섬엔 선사시대 유적 고인돌도 있다.


증도/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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